현대 대의민주주의가 고대 그리스의 직접민주주의와 질적으로 다른 제도적 실천적 내용을 갖고 있었음에도

민주주의의 핵심가치는 달라지지 않았다고 보아야 한다.

여기서 민주주의의 핵심가치란,

사회의 다수를 이루는 보통 사람들이 스스로의 열정, 요구,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체제

혹은 그런 체제를 만들기 위한 정치적 실천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민주주의의 윤리적 기초는

정치과정과 정부의 통치행위가 보통 사람들의 의지와 권익 실현에 기여하고

또 거기에 기반을 두는,
그러한 정치 공동체를 지향하는데 있다고 본다.

좀 더 자유롭고 평등한 정치 공동체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갖고 있다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정치 이념의 매력이다.

 

민주주의의 기본 모델은 하나가 아니라 아테네의 직접민주주의와 현대 대의민주주의, 두 개이다.

이 사실은 민주주의를 풍부하게 하는 결정적인 원천이다.

고대에 발전했던 직접민주주의와 현대 대의제 민주주의는

인민 스스로의 통체 체제를 추구한다는 점,

그리고 정의 평등 자유 인간의 위엄이라는 핵심가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가치와 이념 측면에서 동일성을 갖는다.

또한 그리스 고전학자 조시아 오버가 말했듯이,

권위주의 등 다른 체제와 대별되는 핵심 덕목으로서 '자체수정능력revisability'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공통점을 갖는다.

2,500년의 시공을 뛰어 넘어 양 민주주의 모델은 이러한 가치와 덕목을 공유한다.

 

하지만 제도적 측면에서 양자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현대 대의제에서 실제의 통치자는 인민이 아니라 선출된 대표들이다.

이들은 자신을 선출해준 인민들에게 선거라는 느슨한 고리를 통해서만 책임질 뿐이다.

제도적 실천이 너무 다르기에 고대 민주주의의 제도는

현대의 민주주의를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

제도적 가능성을 둘러싼 현실적 배경의 문제도

현재의 민주주의가 보다 거대한 사회와 복잡한 이슈들을 다룬다는 점에서 매우 이질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대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현대에 여전히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제도적 실천에 있어서는 이질적이지만 그 가치와 이념 등 핵심 내용에 있어서

고대의 민주주의와 현대의 대의민주주의는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아테네 민주주의가 보여준 민중민주주의의 원형은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는 동일성이 유지된다라기보다

처음 아테네에서 실현된 민주주의가 가장 보편적인 가치를 구현했기 때문에

그 가치가 동력이 되어 오늘의 민주주의를 만들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