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럴헤저드moral hazard는 원래 보험업계 용어이다. 화재보험이 발달하던 초창기에 보험사들은 이상한 경향을 발견하였다. 손실에 대비해 건물이나 주택 등에 보험을 들어 놓은 가입자가 전소 화재를 당하는 경향이 높다는 통계였다. 특히 주변 여건의 변화로 건물의 예상 시장가치가 보험금보다 낮아질 때 이런 경향이 심했다. 심지어 일부 지주들은, 유령회사를 설립하여 실제 가치보다 부풀린 가격으로 건물을 사들이고 그 가격을 기준으로 보험에 가입한 다음, 곧바로 화재를 당하여 실제 건물 가치보다 높은 보험금을 타내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모럴헤저드라는 말은, 만약 어떤 일이 잘못될 경우, 그 부담은 다른 사람에게 돌아가도록 해 놓고 자신은 일정 수준의 리스크만 감수하기로 결정한 상황을 뜻하게 되었다.

자금 차입은 본질적으로 모럴헤저드를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 타인의 돈을 대규모로 빌릴 수 있다면, 그 자금을 운용하여 큰 손실을 입는다 하더라도 차입자로서는 손해볼 것이 없다. 파산을 선언하면 발을 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규모 차입이 가능한 상황에서는 차입자는 투자행위를 함에 있어 고도의 위험선호 경향을 갖게 된다. 즉, 고위험 고수익의 투자의사결정을 한다. 이런 경향은 차입자에게 상당히 높은 수준의 이자율을 부담시킨다 해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대부자들은 차입자에게 자금을 대출하면서 그 사용을 놓고 일정한 제약조건을 내건다. 때로는 차입자로 하여금 투자안의 상당부분을 자기자본으로 충당하도록 요구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대부자는 발생가능한 모럴헤저드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차입자에게 일정한 부담을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대부의 원칙이 깨어지는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자산가격의 하락이 마진콜 조건을 충족시켜 강제매도를 통해 추가하락으로 이어지는 상황이 바로 그렇다. 유동화증권들의 거래에 있어서 유사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 바로 현재의 금융위기를 촉발시켰다. 하지만 시장에서 벌어지는 가격기구의 왜곡 이외에도, 모럴헤저드가 시장을 왜곡시키는 좀 더 광범위하고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 차입자들의 도덕적 해이가 납세자들의 세금을 담보로 나타나는 경우이다.
 
일본이나 한국의 대기업집단에는 주거래은행이 자금조달을 담당한다. 이 은행들에 돈을 맡긴 일반 예금주들은 정부가 은행 뒤에 있기 때문에 자신의 예금이 안전하다고 믿는다. 국가가 예금보증을 명문화하지 않는 곳도 많지만, 그 중 어느 나라의 정부도 서민층의 예금을 부실은행이 한순간에 날려버리는 것을 방관하기 어렵다. 이는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 가만히 있을 정부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온정주의는 정부와 국가에 관한 사상적 논의를 차치하고라도 당연한 것이지만, 바로 이 때문에 사람들은 침수지역에 여전히 집을 짓는다. 돈을 어디에 보관할 것이지에 대해서는 그보다도 더 조심하지 않는다. 

이런 부주의가 기업인들에게는 좋은 기회가 된다. 예를 들어 은행을 하나 세운다고 하자. 허용가능한 선에서 높은 이자를 제시하거나 경품행사를 통해 예금을 끌어모은다. 끌어모은 돈을 다시 고리로 대출한다. 이 돈을 차입하는 이들은 웬만한 리스크는 기꺼이 감수하는 투기꾼이다. 예금주들은 예금이 보호받을 거라는 믿음 때문에 투자의 질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이제 결과만 남는다. 투자가 성공하면 은행을 세운 사람은 부자가 되는 것이고, 실패하더라도 털고 나오면 그만이다. 실패의 뒤처리는 정부가 맡는다.

이런 식으로 세금이 오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정부 관료들은 은행들에게 많은 제약을 부과해 왔다. 앞에서 대부자들이 차입자에게 부담을 지우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구체적으로는 은행이 예금주들의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에 제한을 두어 과도한 리스크 감수를 방지하기도 하고, 자기자본비율 규제를 두었으며, 은행업 허가를 통해 은행 간의 경쟁을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시켜 왔다. 그런데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면서 이러한 상황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은행들은 안전한 대신 보수적이었고 또 그만큼 자본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이는 이내 규제철폐 목소리의 주요 비판대상이 되었고, 개혁론자들은 각 은행들이 알아서 돈을 빌려주게 하고 더 많은 신규진입자들이 자본시장에 들어와 예금 유치를 놓고 경쟁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경쟁과 자유를 확대하는데 따르는 위험은 간과되었다. 규제철폐로 은행들이 지나친 리스크까지 감수할 자유를 갖게 되었을 뿐 아니라, 은행업 허가의 특혜적 가치가 작아지면서 은행들이 안전하게 예금을 운용해야 할 당위성도 옅어졌다. 때마침 기업금융 분야에 등장한 다양한 대안적 자금조달방식들은 전통적 은행가들의 이윤을 잠식해나갔다. 더욱이 80년대에는 모럴헤저드가 마치 유행병처럼 전세계로 번져나갔다. 여기에 제대로 대처한 나라는 거의 없다. 미국 역시 저축대부조합의 문제를 잘못 처리하였다. 일본과 한국의 경우는 특히나 정부가 보증하는 대상과 그렇지 않은 대상의 경계가 불분명했던 까닭에 느슨해진 금융체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 일본의 은행들은 다른 나라의 동업자들보다 차용자의 신용에 덜 신경 쓰고 더 많이 빌려주었으며, 결과적으로 거품경제를 기괴한 수준으로까지 부풀리는데 큰 몫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