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 이전까지는 사회적 갈등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사회 내의 '조화'를 이상적으로 보았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는 균형잡히고 조직화된 사회적 갈등이
국가를 역동적으로 만들고 정치적 여건의 변화에 제대로 대처하도록 해준다는 점에서
한 국가를 부강하게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보았다.

그는 한 계급이 일방적으로 지배하는 정부 형태로 군주정, 귀족정, 민주정을 제시하였다.
성립과정에서 이런 정부형태들은 좋은 성과를 얻어내지만,
아무도 견제할 세력이 없기 때문에 군주정은 참주정으로, 귀족정은 과두정으로,
민주정은 무정부에 가까운 혼란상태로 전락하기 쉬우며,
이런 점에서 좋은 형태의 정부체제들이 서로 혼합된 상태로
다양한 계급과 세력들이 서로 견제할 때 
국가가 역동적으로 유지되고 부패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로마가 군주정에서 공화정으로 이행하면서
집정관과 원로원으로 대표되는 군주정-귀족정 혼합정부 형태를 보였고,
후에 호민관으로 대표되는 민주정 형태까지 혼합되면서
로마를 역동적이고 강력하게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정치적 세력간 갈등이
사회적으로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고,
특히 권력의 부패를 어렵게 하며,
갈등의 해결과정을 명확하고 안정적으로 만들기 위해 
성문법규와 그 성립절차를 고민하게 만든다는 마키아벨리의 생각은
현대 정치학에 있어서도 근간이라 할 수 있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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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는
정치를 도덕과 분리하여 사고한 최초의 사상가라는 점에서
근대 정치의 시작이라고 여겨진다.
이전의 사람들이 정치체제를 인간의 덕과 윤리를 실천하는 과정으로 생각해온 반면,
마키아벨리는 정치가 도덕과 별개의 영역이라고 보았다.

마키아벨리 시대, 16세기 초의 이탈리아는
여러 도시국가가 상업 경쟁을 통해 서로 대립하고 있었고
프랑스 스페인 등이 호시탐탐 세력확대를 시도하는 가운데
교황령이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인간에게 주어진 운명을 피할 수 없으며
그 운명에 순응하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간에게 주어진 운명을 상징하는 것이 Fortuna, 즉 운명의 여신이다.

그런데 마키아벨리는
정치적 여건들이 끊임없이 변하는 이유가 어떤 숙명적 법칙 때문이 아니라
우연한 사건들로부터 비롯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주어진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그 운명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여야 하며
우연한 정치변동에 대해 능숙하게 대처하는 것을 virtu라 하였다.
그는 인간에게 주어진 나쁜 운명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virtu를 키우는 것이라고 보았다.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17세기 이탈리아의 상황은
virtu와 관련된 그의 생각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당시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이 주변 강대국들과 교황의 간섭 하에
빈번한 합종연횡으로 서로 주도권 다툼을 하고 있던 상황에서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의 외교관으로 일하며
메디치가 치하의 피렌체가 부침을 겪는 것을 생생하게 목격하였다.
그가 교황청 내부의 세력변화에 따라 체사레 보르자 등의 인물이 부상하고
이에 따라 피렌체가 영향을 받는 것을 보며 <군주론>을 썼다는 것을 상기하면,
virtu에 대한 강조가 근대 정치사상의 기저에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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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관료들은 보통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각종 경제학 개념과 수치와 통계로 무장하고 중요한 사회적 사안들을 모두 경제적 합리성의 문제로 바꿔 버린다.

이들은 국가개조에 맞먹는 결과를 가져올 한미 자유무역협정이나 금융허브 정책을 추진하면서 국민적 동의나 추인을 받은 적이 없다.

 

- 금융경제연구소, 홍기빈 박사 

 

 

한국사회에서 관료들의 힘은 대단하다. 국가주도 경제개발정책이 추진되면서 관료들은 전문성을 가지고 국민 위에서 지도하는 존재가 되었고, 정부정책의 전과정을 주도할 수 있는 독점적 지위를 확보했다. 이런 관료들의 권한행사와 정책집행은 '합리성'과 '공익'이라는 명분하에 이루어지지만 이 공익의 실체에 대해 제대로 논의된 적은 없다.

정책결정도 중요하지만 의제설정도 중요하다. 무엇이 중요한 정책으로 다루어질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정부관료에 의해 독점되고 있다. 앞서 이야기한 FTA나 금융허브 정책이 이런 경우다. 여기에 일반 국민들이 참여하는 것은 각종위원회의 자문위원이나 지원단 정도다. 국회는 국민의 대표기관이지만 정부정책의 의제설정단계에서 개입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만이 아니다. 관료들은 국회입법에도 영향을 미친다. 입법 활동은 국회의 고유권한이지만 정부는 법률안을 제출할 수 있고, 때로는 대통령령이나 부령을 만드는 일을 한다.

정부정책은 국민이 선출한 공직자에 의해 영향을 받기도 한다. 대통령이 바뀌면 정책이 바뀌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 관료들은 단순한 정책의 집행자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정책을 형성하기도 한다. 이런 과정에서 공익적 가치만이 아니라 관료들의 사적 이익이나 또는 사적 영역의 이익들이 비공식적으로 추구되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사적 이익을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해 나간다. 김앤장이 이들 관료들을 영입하고 관료들은 높은 급여를 좇아서 법률회사에 간다면, 이들이 추구하는 공익은 법률회사를 위한 것이 되고, 결국 주요 고객인 우리 사회 상층의 이해를 대변하는 구조가 될 수 밖에 없다.

  

임종인 장화식, <법률사무소 김앤장>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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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의 확대가 무조건 다 좋은 것은 아니다. 계몽적 이해로 뒷받침된 중대사안이 이슈의 범위 내로 들어오지 못할 때, 특정 분야에서의 정치참여는 다른 분야에서의 참여를 오히려 억제시킨다는 '참여적 다원주의의 역설'이 나타나기 쉽다. 바꾸어말하면 정당간이든 경쟁이든 시민사회의 운동이든 잘못된 이슈, 중요하지 않은 이슈에 열정을 쏟는다면 정작 중요한 이슈에 대한 참여를 제약하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에 있어서도 경제문제가 최대 이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한국 사회의 경제적 이슈를 곧 경제성장의 문제와 동일시한다. 모든 사회경제적 문제들은 경제성장이 창출하는 넘쳐흐르는 효과(trickle-down effect)에 의해 해결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들은 경제문제를 어떻게 빨리 성장할 수 있는가의 문제로 단순화한다. 그러므로 정부의 가장 중심적인 정책, 나아가 정치의 핵심적 정책은 모두 성장을 촉진하는 것이어야 하고, 이러한 관점에서 시장의 작동과 자본의 흐름을 방해하는 모든 정책이나 행위는 부정시된다. 이러한 일면적 경제성장 독트린은 과거 권위주의적 산업화를 통해 신화가 되었고, IMF를 거치면서 신자유주의적 논리와 결합해 더욱 강화되어 사실상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여기에서 대안적 경제성장관이나, 재벌중심 생산체제의 거버넌스문제와 같은 정치경제적 문제 혹은 빈곤과 불평등의 심화를 둘러싼 사회정책적 문제들이 중대이슈로 자리잡을 여지는 별로 없다.

 

따지고 보면 기득이익이 가장 강력한 헤게모니를 갖고 있는 영역은 경제와 관련된 이슈다. 여성운동의 이론가 시리아니는 "사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새로운 정의를 제시했다. 이 새로운 정의는 그동안의 전통적인 사회관계에서 전혀 이슈가 될 수 없었던 부부관계를 포함한 가부장적 가정 내의 관계나 가사노동과 같은 사적관계의 영역으로까지 여성운동을 확대할 수 있는 이론화에 기여했다. 같은 논리로 '경제는 정치적인 것이다' 또는 '시장은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정의가 가능하다. 그것은 성장이든 시장효율성이든 그것은 사회적 힘의 관계와 가치가 반영된 정치적 결정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민주화 이후 반복되어 온 한국 정치의 속성이 드러난다. 정치가 현실 생활에서 기초를 둔 사회경제적 이슈영역을 적극적으로 대면하여 그 영역에서의 갈등을 해소해 가면서 정치제도의 개혁이슈나 역사적 정서적 이슈를 흡수통합해 가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후자의 문제를 다루는 데 몰두하면서 전자를 방치한다는데 있다. 후자의 비정치경제적 이슈들이 과도하게 정치화되고 결과적으로 정치가 현실과 유리된 이데올로기 투쟁의 장이 되는 동안, 전자의 사회경제 이슈들은 정치의 중심사안에 들어오지 못하고 탈정치화된다.

 

민주세력들에게 민주정부의 수립과 아울러 자신들이 희망과 기획을 실현할 기회가 부여되었을 때, 현실적인 대안을 통해 현실을 변화시키고자 노력하기 보다 쉽게 안티테제를 말하는데 그치는 것은 운동에 의한 민주화가 가져온 무책임한 관성적 결과물일 수 있다.

 

오늘의 현실에서 신자유주의를 수용하느냐 하지 않느냐 하는 선택의 문제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싫든 좋든 우리의 현실이 되었다. 따라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정책의 차원에서든 사회운동의 차원에서든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들이다.

 

혹자는 기업의 안정적 투자유인, 고용안정, 노동, 복지의 실현을 위해 영미식의 자유경쟁시장체제에 대한 대안으로서 독일식의 '이해당사자 자본주의'를 주장할지 모른다. 그러나 공존과 협력의 노사관계도 발전시키지 못하는 한국의 기업문화에서 유럽식 생산체제로의 비약이 가능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독일식 모델은 노사의 극한적 대립이 파시즘과 2차 세계대전을 초래했다는 역사적 경험에 대한 공유된 인식, 전후 반노동자적 자세로부터 친노동자적 자세로 전환한 기독교의 변신, 이 과정에서 노사화합을 가능케 한 기독교 박애정신, 이를 당의 이념으로 한 기민당의 존재와 같은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조건 등 여러 요소들이 결합되어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누군가가 독일식 모델을 진지하게 정책대안으로 발전시키고자 한다면, 그에 대한 단순한 천명에서 끝날 것이 아니라 이를 실현할 수 있는 한국적 조건들이 무엇인가를 면밀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하나의 정책대안을 만들기 위해 논의되어야 할 문제의 차원은 복합적이다. 먼저 무엇을 개혁할 것인가, 기존의 어떤 것이 개혁되어야 한다면 이를 대체할 대안적 처방은 무엇인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조건들은 어떤 것인가 하는 문제는 그 가운데서도 필수적인 문제일 것이다.

 

::: 최장집 교수 '한국 민주주의의 취약한 사회경제적 기반' 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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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란 사상을 사회적인 목적 달성의 수단으로 전환시킨 것이다.
이데올로기에 힘을 주는 것은 바로 정열이다.
이데올로기를 신봉하는 사람들, 특히 사회주의자들의 경우에 진리란 실천으로부터 생기는 것이다.
그들은 묵상(默想)이 아니라 행위 속에서 살고 있다.
사상의 단순화와 실천적 진리에 대한 헌신이 결합되면, 이데올로기는 민중을 봉기시킬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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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hen Holmes가 주장한 개념.

매디슨적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견해 가운데서도 가장 보수적인 논리이다.

 

정치적 갈등이 지나치게 치열할 때 민주주의는 위험에 놓이기 때문에,

정치적 토의와 행위를 저해하고 갈등 유발을 증폭시키는 이슈들은

정치적 사안에서 배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지나치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을 때 비로소 민주주의가 원만하게 작동할 수 있다는 논리.

이에 따르면, 사회적 갈등을 지나치게 유발하는 이슈들은

정치적 협상과 선거경쟁의 의제에서 배제되어야 한다.

양극화로 인한 사회경제적 갈등을 떼법으로 지칭하여 비판하는 견해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함구의 규칙은 단기적으로는 민주주의의 존속에 기여할 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갈등 표출을 제약함으로써 체제 경직화를 유발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체제에 더 큰 혼란을 초래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논리가 사회질서 유지에 기여함으로써

갈등대립 유보에 적극적으로 차용되는 것은,

그러한 유보가 정책결정권자들이나 의제설정을 주도하는 이들에게

새로운 정책환경을 야기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동시에 구체적 정치현실에 있어서,

불리한 이슈를 일단 피할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한 이유로 작용한다. 

 

 

cf) 현실정치에서는 위와 같은 개념과는 약간 다른 의미로 gag rule 이라는 말이 사용된다.
주로 미국과 같은 양당 위주의 입법과정에서 두 주요정당의 협상으로 특정 정책 내지 입법안이 결정될 때, 합의된 입법안을 그 이외의 정치적 쟁점들과 결부시키지 말 것을 전제로 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 'with gag rule'이라는 표현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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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국회법상 어느 정당이든 원내교섭단체가 구성되어야 의정활동에서 정책차별성을 부각시킬 수 있다.

원내교섭단체 여부에 따라 의정활동에 큰 차이가 발생하는데,

일단 원내교섭단체가 되면 국고보조가 크게 늘어난다.
예컨대 국고보조금의 50%를 교섭단체 수로 나누어 우선적으로 지급받는 것은 물론,
정책입법에 필수적인 정책연구위원을 국고보조로 둘 수 있고,
여기에 수십억 단위의 입법지원비까지 받게 된다.


단지 국고보조금 배정 뿐만이 아니다.
원내교섭단체는 국회운영의 실질적인 핵심단위로
윤리심사요구, 의사일정 변경동의, 국무위원 출석요구, 의안 수정동의, 긴급현안질문, 본회의 및 위원회에서의 발언시간 및 발언자 수, 상임위 및 특별위 의원선임 등에 있어서도 권한을 갖는다.


외국의 경우 영국, 미국, 호주, 독일 상원 등은 교섭단체 구성에 대한 별도의 규정이 없으며,
교섭단체를 두는 경우에는 의원정수의 3~5% 이내로 정하고 있다.
 


외국의 교섭단체 구성요건

국가 의원정수 구성요건

프 랑 스(하원) 577명 의원 30인이상(5%)
독 일(하원) 622명 재적의원의 5%(31인)
이 태 리(하원) 630명 20인이상(3%)
스 페 인(하원) 350명 15인이상(4%)
일 본(중의원) 500명 2인이상
아르헨티나(하원) 257명 3인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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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demos 다수의 결정이 공동체의 전체 이익을 위해 합리적 결정을 만들어 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민주주의의 근본적 문제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설득력 있는 답을 주지 못한다면

여러 다양한 권위주의 체제에 대해 민주주의 체제가 갖는 정당성의 근거는 허약할 수 밖에 없다.

즉 공동선이 무엇인가를 더 잘 알고 그에 관한 지식을 더 많이 갖는

여러 형태의 엘리트지배 체제에 대해 민주주의의 정당성이나 우월함을 주장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로버트 다알은 <민주주의와 그 비판자들>이라는 책에서 이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다알은 이상적인 민주주의의 기준을 먼저 제시하고

이어서 실제 민주주의의 제도와 요건을 기술하고 있는데,

그 이면에는, 민주주의의 실제 제도만으로는

민주주의의 장점이나 가치가 충분히 발현되기 어렵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다알이 제시한 이상적 민주주의의 기준에서 인상적인 것은 '계몽된 이해enlightened understanding'이다.

이 개념은 아무리 정치 참여의 자유와 투표의 평등이 보장된다 하더라도

시민 개개인이 자신의 선호가 어떤 것인지 이성적으로 자각하고,

또 사안에 대해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투표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지지 못할 때

그릇된 민주주의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여기서 '이성적 자각 내지 판단'이란

자신의 선호에 대한 자각과 판단 뿐 아니라

개별 사안과 정책, 입법에 있어서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과 특히 경제적 이해를 위시한 제반 이해관계를

이성적으로 평가하고 의사결정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아테네 민주주의에서 데모스, 즉 인민은

직접 의회에 참여하고 공동체의 중대 사안을 결정하는 법의 제정자이자 주권의 원천이었다.

그와 동시에 아테네 민주주의는 인민의 참여와 에너지가 공익성의 실현으로 귀결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통제하였다.

그 제도적 장치가 얼마나 정교했는가 하는 것은 당시 몇 가지 제도를 보면 곧 알 수 있다.

유티나이Euthynai는 행정관들이 임기가 끝날 때 자동으로 회계감사를 받아야 하는 제도로,

현직에 있을 때 부정을 막기 위한 것이다.

에이상게리아Eisangelia는 공직자, 특히 장군들에게 적용된 법으로

장군이 군사작전에서 실패했을 때 반역죄로 고발될 수 있는 엄혹한 제도이다.

그리고 매우 흥미 있는 제도는 그라페 파라노몬Graphe paranomon인데,

누군가가 어떤 법안을 제안해 그 발의가 민회를 통과해 법이 됐는데

그 법이 시행한 결과가 공동체에 해악을 끼쳤다고 할 때 그 법의 제안자를 사후에 고발할 수 있는 제도이다.

절차적으로 합법적이었다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결과가 나쁠 때 그 책임을 묻는 결과 책임의 원리이다.

 

 

최장집 어떤 민주주의인가 p.38

 

 




민중적 민주주의 -> '민주주의란 무엇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내용과 규범을 부여

매디슨적 민주주의 -> 민주주의가 실제로 작동할 수 있는 기능과 역할   ' the scheme of representation'

            일반 대중이 직접 정치에 참여 (투표로써..)

                       갈등하는 이들의 이익과 권리를 배제하지 아니하고 하나의 통치체제로 통합하여

                       정치참여를 최대한 허용

            동시에, 다수지배를 스스로 견제하는 체제

                       tyranny of majority 에 대한 '제도적' 배제  

 


민중의 광범위한 참여에 입각한 민중적 민주주의는

일상적 현실 내에서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제약에 직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중적 민주주의는,

현실사회의 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이상과 가치에 대한 '사회적 상상'을 창출하는 동력이 된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매디슨적 민주주의는 일상성 속에 운영가능하다는 점에서 설득력과 정당성을 갖는다.

민중적 민주주의가 달성하지 못하는 실현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디슨의 민주주의는 강점이 있다.

이러한 강점은 미국의 헌정사상과 대의제 민주주의로 구체화에 성공하였다.

 

하지만 매디슨의 민주주의 역시 일정한 한계를 가진다.

안정화와 일상성은 민주주의의 제도화를 가능케 하는데 중요한 기반을 마련해주었지만

반면에 체제경직성의 문제를 내포할 수 밖에 없게 만든다.

또, 다수지배를 견제하기 위한 대표제는

현실적으로 대중의 정치참여 경로를 경색시킴으로써

사회적 갈등이 실질적으로 대표될 기회를 축소시킨다.

결과적으로 엘리트집단과 기득권이 정치적 헤게모니를 획득하게 됨으로써

소수 이익집단들에 국한되는 퇴영적 다원주의를 초래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빈자만을 위한, 빈자에 의한 지배체제이기 때문에 왜곡된 정치체제라고 규정했다.

그는 민주주의를 시민 전체를 의미하는 인민demos 스스로의 지배,

인민의 권력을 실현하는 체제로서가 아니라

빈자들이 집단 이익을 다수 지배의 방식으로 실현하는 체제로 이해했다.

 

플라톤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적 입장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플라톤은 사물에 대한 절대적으로 올바른 지식이 존재한다고 가정함으로써,

모든 개인의 의견이 평등한 가치를 갖고

그에 따라 다수 의견이 결정력을 갖는 집단적 의사결정방식을 수용할 수 없었다.

<국가>에서 그는, 공동체의 공공선을 위해 무엇이 최선인가라는 이상주의적인 견지에서,

특별히 교육받은 통치자집단, 즉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희생하면서라도 공공선에 대한 지식을 탐구하고

공적 영역에서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후견자들guardians이

공동체의 집단적 의사를 결정해야 한다고 보았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민주주의에 대해 부정적이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특히 민주주의를 빈자들이 스스로 사회의 다수라는 점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다수 지배의 결정방식으로 실현하는 체제라고 보았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이상적인 정치체제는

사회 성원들이 그들 자신의 이익만을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정의와 조화를 증진해서 일반 이익을 실현하고자 매진하는 체제였다.

 

 


 

현대 대의민주주의가 고대 그리스의 직접민주주의와 질적으로 다른 제도적 실천적 내용을 갖고 있었음에도

민주주의의 핵심가치는 달라지지 않았다고 보아야 한다.

여기서 민주주의의 핵심가치란,

사회의 다수를 이루는 보통 사람들이 스스로의 열정, 요구,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체제

혹은 그런 체제를 만들기 위한 정치적 실천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민주주의의 윤리적 기초는

정치과정과 정부의 통치행위가 보통 사람들의 의지와 권익 실현에 기여하고

또 거기에 기반을 두는,
그러한 정치 공동체를 지향하는데 있다고 본다.

좀 더 자유롭고 평등한 정치 공동체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갖고 있다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정치 이념의 매력이다.

 

민주주의의 기본 모델은 하나가 아니라 아테네의 직접민주주의와 현대 대의민주주의, 두 개이다.

이 사실은 민주주의를 풍부하게 하는 결정적인 원천이다.

고대에 발전했던 직접민주주의와 현대 대의제 민주주의는

인민 스스로의 통체 체제를 추구한다는 점,

그리고 정의 평등 자유 인간의 위엄이라는 핵심가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가치와 이념 측면에서 동일성을 갖는다.

또한 그리스 고전학자 조시아 오버가 말했듯이,

권위주의 등 다른 체제와 대별되는 핵심 덕목으로서 '자체수정능력revisability'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공통점을 갖는다.

2,500년의 시공을 뛰어 넘어 양 민주주의 모델은 이러한 가치와 덕목을 공유한다.

 

하지만 제도적 측면에서 양자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현대 대의제에서 실제의 통치자는 인민이 아니라 선출된 대표들이다.

이들은 자신을 선출해준 인민들에게 선거라는 느슨한 고리를 통해서만 책임질 뿐이다.

제도적 실천이 너무 다르기에 고대 민주주의의 제도는

현대의 민주주의를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

제도적 가능성을 둘러싼 현실적 배경의 문제도

현재의 민주주의가 보다 거대한 사회와 복잡한 이슈들을 다룬다는 점에서 매우 이질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대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현대에 여전히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제도적 실천에 있어서는 이질적이지만 그 가치와 이념 등 핵심 내용에 있어서

고대의 민주주의와 현대의 대의민주주의는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아테네 민주주의가 보여준 민중민주주의의 원형은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는 동일성이 유지된다라기보다

처음 아테네에서 실현된 민주주의가 가장 보편적인 가치를 구현했기 때문에

그 가치가 동력이 되어 오늘의 민주주의를 만들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