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의 확대가 무조건 다 좋은 것은 아니다. 계몽적 이해로 뒷받침된 중대사안이 이슈의 범위 내로 들어오지 못할 때, 특정 분야에서의 정치참여는 다른 분야에서의 참여를 오히려 억제시킨다는 '참여적 다원주의의 역설'이 나타나기 쉽다. 바꾸어말하면 정당간이든 경쟁이든 시민사회의 운동이든 잘못된 이슈, 중요하지 않은 이슈에 열정을 쏟는다면 정작 중요한 이슈에 대한 참여를 제약하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에 있어서도 경제문제가 최대 이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한국 사회의 경제적 이슈를 곧 경제성장의 문제와 동일시한다. 모든 사회경제적 문제들은 경제성장이 창출하는 넘쳐흐르는 효과(trickle-down effect)에 의해 해결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들은 경제문제를 어떻게 빨리 성장할 수 있는가의 문제로 단순화한다. 그러므로 정부의 가장 중심적인 정책, 나아가 정치의 핵심적 정책은 모두 성장을 촉진하는 것이어야 하고, 이러한 관점에서 시장의 작동과 자본의 흐름을 방해하는 모든 정책이나 행위는 부정시된다. 이러한 일면적 경제성장 독트린은 과거 권위주의적 산업화를 통해 신화가 되었고, IMF를 거치면서 신자유주의적 논리와 결합해 더욱 강화되어 사실상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여기에서 대안적 경제성장관이나, 재벌중심 생산체제의 거버넌스문제와 같은 정치경제적 문제 혹은 빈곤과 불평등의 심화를 둘러싼 사회정책적 문제들이 중대이슈로 자리잡을 여지는 별로 없다.

 

따지고 보면 기득이익이 가장 강력한 헤게모니를 갖고 있는 영역은 경제와 관련된 이슈다. 여성운동의 이론가 시리아니는 "사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새로운 정의를 제시했다. 이 새로운 정의는 그동안의 전통적인 사회관계에서 전혀 이슈가 될 수 없었던 부부관계를 포함한 가부장적 가정 내의 관계나 가사노동과 같은 사적관계의 영역으로까지 여성운동을 확대할 수 있는 이론화에 기여했다. 같은 논리로 '경제는 정치적인 것이다' 또는 '시장은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정의가 가능하다. 그것은 성장이든 시장효율성이든 그것은 사회적 힘의 관계와 가치가 반영된 정치적 결정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민주화 이후 반복되어 온 한국 정치의 속성이 드러난다. 정치가 현실 생활에서 기초를 둔 사회경제적 이슈영역을 적극적으로 대면하여 그 영역에서의 갈등을 해소해 가면서 정치제도의 개혁이슈나 역사적 정서적 이슈를 흡수통합해 가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후자의 문제를 다루는 데 몰두하면서 전자를 방치한다는데 있다. 후자의 비정치경제적 이슈들이 과도하게 정치화되고 결과적으로 정치가 현실과 유리된 이데올로기 투쟁의 장이 되는 동안, 전자의 사회경제 이슈들은 정치의 중심사안에 들어오지 못하고 탈정치화된다.

 

민주세력들에게 민주정부의 수립과 아울러 자신들이 희망과 기획을 실현할 기회가 부여되었을 때, 현실적인 대안을 통해 현실을 변화시키고자 노력하기 보다 쉽게 안티테제를 말하는데 그치는 것은 운동에 의한 민주화가 가져온 무책임한 관성적 결과물일 수 있다.

 

오늘의 현실에서 신자유주의를 수용하느냐 하지 않느냐 하는 선택의 문제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싫든 좋든 우리의 현실이 되었다. 따라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정책의 차원에서든 사회운동의 차원에서든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들이다.

 

혹자는 기업의 안정적 투자유인, 고용안정, 노동, 복지의 실현을 위해 영미식의 자유경쟁시장체제에 대한 대안으로서 독일식의 '이해당사자 자본주의'를 주장할지 모른다. 그러나 공존과 협력의 노사관계도 발전시키지 못하는 한국의 기업문화에서 유럽식 생산체제로의 비약이 가능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독일식 모델은 노사의 극한적 대립이 파시즘과 2차 세계대전을 초래했다는 역사적 경험에 대한 공유된 인식, 전후 반노동자적 자세로부터 친노동자적 자세로 전환한 기독교의 변신, 이 과정에서 노사화합을 가능케 한 기독교 박애정신, 이를 당의 이념으로 한 기민당의 존재와 같은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조건 등 여러 요소들이 결합되어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누군가가 독일식 모델을 진지하게 정책대안으로 발전시키고자 한다면, 그에 대한 단순한 천명에서 끝날 것이 아니라 이를 실현할 수 있는 한국적 조건들이 무엇인가를 면밀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하나의 정책대안을 만들기 위해 논의되어야 할 문제의 차원은 복합적이다. 먼저 무엇을 개혁할 것인가, 기존의 어떤 것이 개혁되어야 한다면 이를 대체할 대안적 처방은 무엇인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조건들은 어떤 것인가 하는 문제는 그 가운데서도 필수적인 문제일 것이다.

 

::: 최장집 교수 '한국 민주주의의 취약한 사회경제적 기반' 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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