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 민주주의에서 데모스, 즉 인민은

직접 의회에 참여하고 공동체의 중대 사안을 결정하는 법의 제정자이자 주권의 원천이었다.

그와 동시에 아테네 민주주의는 인민의 참여와 에너지가 공익성의 실현으로 귀결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통제하였다.

그 제도적 장치가 얼마나 정교했는가 하는 것은 당시 몇 가지 제도를 보면 곧 알 수 있다.

유티나이Euthynai는 행정관들이 임기가 끝날 때 자동으로 회계감사를 받아야 하는 제도로,

현직에 있을 때 부정을 막기 위한 것이다.

에이상게리아Eisangelia는 공직자, 특히 장군들에게 적용된 법으로

장군이 군사작전에서 실패했을 때 반역죄로 고발될 수 있는 엄혹한 제도이다.

그리고 매우 흥미 있는 제도는 그라페 파라노몬Graphe paranomon인데,

누군가가 어떤 법안을 제안해 그 발의가 민회를 통과해 법이 됐는데

그 법이 시행한 결과가 공동체에 해악을 끼쳤다고 할 때 그 법의 제안자를 사후에 고발할 수 있는 제도이다.

절차적으로 합법적이었다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결과가 나쁠 때 그 책임을 묻는 결과 책임의 원리이다.

 

 

최장집 어떤 민주주의인가 p.38

 

 




민중적 민주주의 -> '민주주의란 무엇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내용과 규범을 부여

매디슨적 민주주의 -> 민주주의가 실제로 작동할 수 있는 기능과 역할   ' the scheme of representation'

            일반 대중이 직접 정치에 참여 (투표로써..)

                       갈등하는 이들의 이익과 권리를 배제하지 아니하고 하나의 통치체제로 통합하여

                       정치참여를 최대한 허용

            동시에, 다수지배를 스스로 견제하는 체제

                       tyranny of majority 에 대한 '제도적' 배제  

 


민중의 광범위한 참여에 입각한 민중적 민주주의는

일상적 현실 내에서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제약에 직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중적 민주주의는,

현실사회의 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이상과 가치에 대한 '사회적 상상'을 창출하는 동력이 된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매디슨적 민주주의는 일상성 속에 운영가능하다는 점에서 설득력과 정당성을 갖는다.

민중적 민주주의가 달성하지 못하는 실현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디슨의 민주주의는 강점이 있다.

이러한 강점은 미국의 헌정사상과 대의제 민주주의로 구체화에 성공하였다.

 

하지만 매디슨의 민주주의 역시 일정한 한계를 가진다.

안정화와 일상성은 민주주의의 제도화를 가능케 하는데 중요한 기반을 마련해주었지만

반면에 체제경직성의 문제를 내포할 수 밖에 없게 만든다.

또, 다수지배를 견제하기 위한 대표제는

현실적으로 대중의 정치참여 경로를 경색시킴으로써

사회적 갈등이 실질적으로 대표될 기회를 축소시킨다.

결과적으로 엘리트집단과 기득권이 정치적 헤게모니를 획득하게 됨으로써

소수 이익집단들에 국한되는 퇴영적 다원주의를 초래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빈자만을 위한, 빈자에 의한 지배체제이기 때문에 왜곡된 정치체제라고 규정했다.

그는 민주주의를 시민 전체를 의미하는 인민demos 스스로의 지배,

인민의 권력을 실현하는 체제로서가 아니라

빈자들이 집단 이익을 다수 지배의 방식으로 실현하는 체제로 이해했다.

 

플라톤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적 입장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플라톤은 사물에 대한 절대적으로 올바른 지식이 존재한다고 가정함으로써,

모든 개인의 의견이 평등한 가치를 갖고

그에 따라 다수 의견이 결정력을 갖는 집단적 의사결정방식을 수용할 수 없었다.

<국가>에서 그는, 공동체의 공공선을 위해 무엇이 최선인가라는 이상주의적인 견지에서,

특별히 교육받은 통치자집단, 즉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희생하면서라도 공공선에 대한 지식을 탐구하고

공적 영역에서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후견자들guardians이

공동체의 집단적 의사를 결정해야 한다고 보았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민주주의에 대해 부정적이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특히 민주주의를 빈자들이 스스로 사회의 다수라는 점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다수 지배의 결정방식으로 실현하는 체제라고 보았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이상적인 정치체제는

사회 성원들이 그들 자신의 이익만을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정의와 조화를 증진해서 일반 이익을 실현하고자 매진하는 체제였다.

 

 


 

현대 대의민주주의가 고대 그리스의 직접민주주의와 질적으로 다른 제도적 실천적 내용을 갖고 있었음에도

민주주의의 핵심가치는 달라지지 않았다고 보아야 한다.

여기서 민주주의의 핵심가치란,

사회의 다수를 이루는 보통 사람들이 스스로의 열정, 요구,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체제

혹은 그런 체제를 만들기 위한 정치적 실천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민주주의의 윤리적 기초는

정치과정과 정부의 통치행위가 보통 사람들의 의지와 권익 실현에 기여하고

또 거기에 기반을 두는,
그러한 정치 공동체를 지향하는데 있다고 본다.

좀 더 자유롭고 평등한 정치 공동체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갖고 있다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정치 이념의 매력이다.

 

민주주의의 기본 모델은 하나가 아니라 아테네의 직접민주주의와 현대 대의민주주의, 두 개이다.

이 사실은 민주주의를 풍부하게 하는 결정적인 원천이다.

고대에 발전했던 직접민주주의와 현대 대의제 민주주의는

인민 스스로의 통체 체제를 추구한다는 점,

그리고 정의 평등 자유 인간의 위엄이라는 핵심가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가치와 이념 측면에서 동일성을 갖는다.

또한 그리스 고전학자 조시아 오버가 말했듯이,

권위주의 등 다른 체제와 대별되는 핵심 덕목으로서 '자체수정능력revisability'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공통점을 갖는다.

2,500년의 시공을 뛰어 넘어 양 민주주의 모델은 이러한 가치와 덕목을 공유한다.

 

하지만 제도적 측면에서 양자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현대 대의제에서 실제의 통치자는 인민이 아니라 선출된 대표들이다.

이들은 자신을 선출해준 인민들에게 선거라는 느슨한 고리를 통해서만 책임질 뿐이다.

제도적 실천이 너무 다르기에 고대 민주주의의 제도는

현대의 민주주의를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

제도적 가능성을 둘러싼 현실적 배경의 문제도

현재의 민주주의가 보다 거대한 사회와 복잡한 이슈들을 다룬다는 점에서 매우 이질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대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현대에 여전히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제도적 실천에 있어서는 이질적이지만 그 가치와 이념 등 핵심 내용에 있어서

고대의 민주주의와 현대의 대의민주주의는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아테네 민주주의가 보여준 민중민주주의의 원형은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는 동일성이 유지된다라기보다

처음 아테네에서 실현된 민주주의가 가장 보편적인 가치를 구현했기 때문에

그 가치가 동력이 되어 오늘의 민주주의를 만들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